
공포영화 장르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감독 아리 애스터(Ari Aster)는 《유전(Hereditary, 2018)》과 《미드소마(Midsommar, 2019)》라는 두 작품으로 전 세계 영화 팬들의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두 영화는 각각 가족과 공동체, 어둠과 빛, 슬픔과 해방이라는 상반된 이미지와 테마를 담고 있으며, 공포를 심리적 해석과 철학적 질문으로 끌어올린 대표작입니다. 본 글에서는 두 작품의 스토리, 연출, 상징을 비교 분석하며 아리 애스터의 공포 세계관을 깊이 있게 탐색합니다.
스토리 비교: 가족 붕괴 vs 관계 해방
《유전》은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주인공 애니와 가족 구성원들이 점점 파멸로 빠져드는 과정을 그립니다. 유전성 정신질환, 오컬트, 사탄 숭배 집단 등 복합적인 요소가 얽히며 ‘가족의 유대가 어떻게 저주로 바뀌는가’를 중심 테마로 삼습니다. 모든 일이 운명처럼 정해져 있고, 애니와 그녀의 아이들은 그것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구조 속에 있습니다. 반면 《미드소마》는 가족을 잃은 여성 대니가 남자친구 크리스티안과 함께 스웨덴의 공동체 축제에 참여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이 영화는 전통적 공포보다 심리적 불안, 인간관계의 해체, 그리고 새로운 소속감을 테마로 하고 있습니다. 대니는 기존의 연인과 친구들에게 소외받지만, 하르가 공동체에서는 처음으로 ‘감정적 연대’를 경험합니다. 이처럼 《유전》은 피로 맺어진 가족이 저주가 되는 이야기, 《미드소마》는 혈연 외의 관계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이야기로 상반된 서사를 구성합니다.
연출 방식 비교: 어둠 속 공포 vs 대낮의 불안
《유전》은 전형적인 공포영화처럼 어두운 공간, 조용한 분위기, 갑작스러운 충격을 활용합니다. 특히 장면 전환 시 모형 집과 실제 공간을 오가는 연출은 인물들이 ‘감시당하고 있는 인형’ 같다는 느낌을 주며 심리적 불안을 조성합니다. 토니 콜렛의 감정 폭발 연기는 이 분위기를 한층 강화합니다. 반대로 《미드소마》는 거의 모든 장면이 밝은 대낮에 펼쳐지며, 전통적인 ‘어두움 = 공포’의 공식을 뒤집습니다. 햇빛이 가득한 배경 속에서도 극도의 공포와 혐오를 유도하며, 시청자는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 영화는 플로렌스 퓨의 미세한 표정 변화와 카메라 워킹, 색채 연출로 불안감을 유발합니다. 두 작품은 서로 다른 연출 방식을 택했지만, 공통적으로 주인공의 심리를 극단적으로 노출시키는 방식으로 관객에게 몰입감을 줍니다.
상징과 테마 비교: 저주와 운명 vs 해방과 선택
《유전》의 주요 상징은 ‘운명’과 ‘저주’입니다. 인물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파멸을 피할 수 없는 구조 안에 있으며, 사탄 숭배 집단에 의해 모든 것이 계획되어 있다는 설정은 인간의 무력감을 극대화합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들이 악마 ‘파이몬’의 육체가 되며 새로운 왕으로 군림하게 되는 구조는, 인간의 의지가 철저히 부정당하는 결말입니다. 《미드소마》에서는 ‘선택’과 ‘해방’이 중요한 테마로 등장합니다. 대니는 크리스티안을 직접 희생 제물로 선택하며 처음으로 자신만의 결정을 내리고, 개인적 상처를 ‘공동체의 공감’을 통해 극복합니다. 영화 속 하르가 공동체는 비정상적인 집단처럼 보이지만, 외부 세계에서 상처받은 대니에게는 해방구로 작용합니다. 즉, 《유전》은 외부에 의해 운명이 결정된 서사, 《미드소마》는 주인공의 선택으로 마무리되는 서사로, 희생과 통제를 둘러싼 해석이 전혀 다르게 전개됩니다.
《유전》과 《미드소마》는 장르적으로는 공포영화지만, 그 속에 담긴 메시지는 인간의 내면, 관계, 소속, 존재 의미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아리 애스터는 단순한 ‘놀라움’이 아니라, 불편함과 공감, 심리적 해방의 모순을 작품에 녹여냈습니다. 두 작품 모두 독립적으로도 훌륭하지만, 함께 비교하면 아리 애스터 감독의 철학과 연출의 진화가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어둠 속의 공포가 아닌, 빛 속의 불안, 관계 속의 고립, 선택과 통제의 경계를 다룬 이 두 영화는 현대 공포영화의 새로운 기준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